본문 바로가기

[공부법] 선행은 왜 해야 할까? 꼭 해야 할까?

선행은 왜 해야 할까? 꼭 해야 할까?

요즘은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이 중등수학,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이 고등수학을 공부하는 것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요새는 다들 그렇게 하니까, 나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뒤쳐진다라는 불안감이 작용해서 더 빠른 선행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공부하던 시절에는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 엄마 지인 아이들 정도가 비교 대상이었다면, 이제는 전국의 똑똑한 친구들이 다 비교 대상이 되어버렸죠. 

 

선행이 필요한가에 대한 논쟁에는 꼭 나오는 얘기가 있습니다. 선행을 하지 않아도, 공부를 늦게 시작했지만 목표를 이룬 친구들 얘기죠. 어제 상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자연계열을 곧 졸업 예정인 선생님를 인터뷰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외국에 살다 와서 수학 선행이라는 걸 거의 안한 채로 상산고에 입학했다고 하시더라구요. 한 학년 정도 분량만 선행을 해도 수업을 따라가는데 문제가 없었고, 수학은 항상 잘하는 편이었다고 합니다. 

 

그 얘기를 듣다보니 제가 매번 언급하는 제 과학고 동기인 CTO 생각이 나더라구요. 제 CTO가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다는 얘기는 제가 하도 하고 다녀서 다들 아실거에요. 제 기억엔 수학 1등급 (전교 2등 이내) 를 놓친 적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 친구도 선행을 한 학년 정도만 하고 들어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수학 경시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니구요. 

 

즉, 분명 선행을 많이 하지 않았음에도, 성공한 케이스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선행을 안해도 되는걸까요? 우리는 수 많은 정보와 예시들을 접하게 되고, 그 중에 누굴 따라할 건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제 경험상 저렇게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한 번에 이해하고 응용할 수 있는 케이스는 극히 드뭅니다. 

 

1. 공부는 수 많은 반복, 시행착오를 거쳐야 원하는 실력을 얻을 수 있다.

공부는 이해 -> 암기 -> 응용 -> 비판 (메타인지) 4단계를 계속 반복하면서 실력이 늘게 됩니다. 일단 한 번 공부하고나서, 비판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걸 깨닫고, 다시 적용하고를 반복하다보면 어느 순간 원하는 만큼의 실력을 갖추게 됩니다. 이를 우리는 시행착오를 겪었다라고 하기도 하고, 오개념을 가지고 있다라고도 합니다. 

 

사람의 타고난 성격, 재능 등에 따라 얼마나 많이 반복해야 하는가, 다르게 얘기하면 얼마나 시행착오를 겪는가가 달라집니다. 글 초반에 언급한 분들은 시행착오를 적게 겪고도 원하는 실력을 갖출 수 있는 사람들인거죠. 저는 반대로 왠만한 사람들 보다 훨씬 시행착오를 많이 겪는 스타일입니다. 대신 저는 비판 (메타인지)가 잘 되는 편이라, 시행착오를 겪는 주기가 엄청 빨랐고, 그 덕분에 원하는 실력을 갖출 수 있었죠. 쉽게 얘기하면, 대충 공부하는 대신 많이 반복하고, 많은 문제를 푸는 방법으로 원하는 실력을 갖췄습니다.

 

(제가 잘 가르칠 수 있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시행착오는 모두 겪어봤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공감을 더 잘합니다. 어떻게 알려주면 그 시행착오를 벗어 날 수 있는지 아이들 눈높이에서 알려 줄 수 있죠.)

 

시행착오를 겪으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선행을 일찍 시작하는게 유리합니다. 당장 눈 앞이 시험인데 시행착오 겪을 수 있나요. 우리 미리 시행착오를 겪고, 시험을 앞에 두고는 이미 완성된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일찍 시작할 수록 시행착오를 겪을 여유가 많죠. 제가 저번 글에서 중등 수학을 학기당 6~7권씩 풀고도 잘 모르는 상태로 고등수학으로 넘어갔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혼자 공부했고, 문제 풀고 풀이 방법을 익히는 걸 좋아했지, 개념을 깊이 고민하는 걸 안 좋아 했어서, 시행착오를 정말 많이 겪었습니다. 그래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건 초4 여름 방학부터 시작한 덕분이죠.

 

그러면 무조건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건가요? 많이 반복하면 좋은건가요? 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우리의 목표는 빠르거나, 많이 반복하는게 아니라, 확실하게 이해하고 넘어가는거에요. 선행을 빨리 시작하는 것도 내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일 때 시작해야지, 반도 이해 못하는데 억지로 일찍 시작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또, 선행이 늦었더라도, 한 번 공부할 때 확실하게 하고 넘어가면 그게 오히려 더 결과가 좋을 수 있습니다. 

 

즉, 시행착오를 겪을 것에 대비해 빠르게 시작하는 것은 좋지만, 지금 과정을 6~70%는 소화할 수 있을 때 시작하는게 좋습니다. 그리고 정말 대부분의 학생들은 (최상위권도 마찬가지) 처음 공부할 때 6~70% 정도 이해하고, 심화 공부 또는 다음 단계의 공부를 하면서 나머지 3~40%를 완성합니다. 한 번에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또, 너무 대충하면서 넘어가시는 것도 안 되구요. 

 

그 적정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모님이 옆에서 지속적으로 관찰해주셔야 합니다. 학원을 다니고 있더라도요. 

 

 

 

2. 선행은 아이에게 수학에 대한 자신감을 만들어 줍니다.

요즘은 영어 유치원을 안 보내면 큰 문제가 생긴다는 얘기들이 많습니다. 근데 재밌는 건, 애초에 영어를 아예 안해도 인생 살아가는데 큰 문제가 없는데, 고작 영어 유치원을 안 보냈다고 큰 문제가 생긴다니 이게 무슨 소릴까요. 

 

영어 유치원을 보낸다는 건 결국 영어를 일찍 선행한다는 거고, 특히 언어적인 부분은 일찍 노출되면 효과가 좋은게 맞기 때문에 분명 영어 유치원에서 영어 공부한 친구들이 영어를 잘합니다. 근데 그렇게 잘한다고 해서 살아가는데 크게 도움이 되냐? 전혀 아닙니다. 

 

문제는 그렇게 영어를 잘하는 친구들에 둘러 쌓인, 영어를 배워본 적 없는 아이에게는 문제가 생깁니다. 주변 친구들은 다 영어를 잘 하는데, 자기는 나름 열심히 한다고 해도, 못 따라 가겠고, 발음도 별로라고 무시당하고 하니 영어에 대한 흥미를 잃습니다. 나는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고, 영어는 재미없는 과목이고, 나는 영어가 싫으니까 안할거야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영어 유치원에 가서 도움이 되는게 아니라, 영어 유치원에 갔다온 친구들 틈에서 영어를 못 하는 채로 다니면 그게 문제가 됩니다.

 

수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릴 때 수학 책도 많이 읽고, 문제집도 몇 권 미리 풀어보면, 어딜 가도 수학을 잘한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그게 시작이 되어서, 새로운 걸 배우는데 거부감이 없어지고, 선행을 하기 시작하죠. 그러면 이 아이 입장에서는 나는 수학을 잘해, 나는 수학이 재밌어, 나는 다른 거 안하고 수학 공부할거야가 됩니다. (제가 이렇게 컸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창의력과 공간지각력이 좋지 않아서 제 머리가 좋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찍 시작한 덕분에, 항상 자존감 높게,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시행착오를 겪음에도 자존감이 떨어질 일이 별로 없었구요.

 

선행이 수학에 대한 자신감을 만들어주고, 그게 동기부여가 되어서 더 잘하게 된다. 아주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방법입니다. 선행이라는게 꼭 다음 진도를 나가는게 아니라, 수학에 대해서 책이든 퀴즈든 영상이든 다양하게 노출시켜주면서, 내가 다른 친구들보다 수학적으로 뛰어나다라는 자존감만 만들어주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내가 수학이 재밌으면, 내가 수학에 대한 자존감이 높으면 엄마가 시키지 않아도 합니다. 사춘기가 와도 수학 공부는 합니다. 그게 자존감의 위력입니다.

 

 

선행을 무작정 찬양하거나, 또, 선행을 무작정 비판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래와 같은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1. 적절한 선행은 분명히 도움이 됩니다.

2.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선행에 불안감을 느끼실 필요 없습니다.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다음 글도 추천드립니다.

 

2022.09.19 - [최상위권이 되기 위한 수학 로드맵/중등 수학 로드맵] - [중등수학] 중등 수학은 학기당 몇 번 정도 반복하면 좋을까?

 

[중등수학] 중등 수학은 학기당 몇 번 정도 반복하면 좋을까?

중등 수학은 학기당 몇 번 정도 반복하면 좋을까? 중등 수학을 공부 하면서 가장 고민이 되는 부분은,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기 전에 몇 권이나 풀어야 할까? 입니다. 누구는 3권 정도만 풀면

pnote.tistory.com